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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발해 관련 자료

대륙조선

by 이주한2022 2019. 2. 2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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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한국통사] 이태백이 [ 발해어 ]를 하다 | 훈민정음 이전에 고조선 문자 존재

 - 당 현종 당시 발해로 부터 온 국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수소문하다 찾은 사람이 /이태백/ 이었고, 

   그 문서를 읽은 후 바로 답장을 써주었다는 이야기..!!

   발해에서 고유 언어로 국서를 보내왔다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나온다.

 - 김윤경, 권덕류 국어학자 <-- 일제강점기 한글학회 관련 탄압 받음

 - 권문해 /조선시대학자/ <--단군시대 /신지/가 문자 만들었다. 

 - 거란이 발해를 정복, 여진 관련해 이들이 갖고 있는 문자가

    발해어와 관련이 있었을 수 있다.

 

[문화소개] 우리와 닮은것도 모자라 한국어를 쓰는 러시아의 바이칼 소수민족(ft.아리랑 쓰리랑~)

 - 아직도 에벤키 족은 아리랑, 쓰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아리랑: 맞이하다

   --쓰리랑: 느껴서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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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추적! 발해황후묘는 왜 공개되지 못하나

 - 2004년 중국에서 발굴됨

 

영상한국사 ㅣ 167 발해 황후 무덤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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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공주묘 해부도

- 대한민국 역사 백과사전

 

정혜공주 묘

- 환단고기 등장 이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발해 3대 문왕 대흠무의 연호가 환단고기에 ‘대흥大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기 1949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 묘지 비문에서 문왕 대흠무가 자기 존호를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歷孝感金輪聖法大王’이라 하고 불법의 수호자로 자처한 데서 드러나, 

환단고기가 사료로서 가치 있음이 실증되었다.

[출처] 발해 정혜공주묘와 정효공주 묘|작성자 홍익인간

 

 

발해 공주가 남긴 역사로 말한다

  1949년 이후 세상에 나온 발해 공주들의 묘, 우선 정혜공주 무덤은
  1949년 돈화의 계동중학과 연변대학 역사과가 길림성 돈화시 육정산에서 발굴하였다. 
 
  “발해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니라 엄연한 고구려의 후예들이 세운 황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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